# 편해졌어.
뭐가 바뀌었냐면.
지내는게 조금 더 편해졌어.
많은 것을 안해도 되거든.
가끔 화장실 플라스틱 구석에 오줌이나 똥이 묻어 굳어 있고
냄새 나는 모래를 비울 일이 없어졌거든.
가끔 치우는 게 늦어지면 보란 듯이 방바닥에 싸는 일도 없어졌지.
어두운 색 옷을 입을 때
고로고로를 찾아서 털을 떼지 않아도 되거든.
그냥 고로고로는 잘 떼어지지도 않아. 강한 걸로 써야했지.
좋아하는 검정 색 옷을 더 편하게 입게 됐어.
예상치 못하게 밤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밥을 주러 부랴부랴 집에 들어갔다 나오던 일이 없어 졌어.
지방이나 해외에 갈 때
누구한테 봐 달라거나
혹시 굶을 까봐 자동 급식기를 몇 번이나 시험해보고 셋팅 안해도 되거든.
벅-벅-
가구나 벽지 모서리를 발톱으로 뜯을 때마다 소리 칠 일이 없어졌어
손, 발 긁혀가며
길어진 발톱을 깎으려고 실랑이 할 일도 없어졌어
자고 있는데 청소기를 돌리면 싫어할까봐
그 핑계로 청소를 미룰 일도 없어졌거든.
한 이틀 청소기를 안돌렸는데도
집안이 깨끗해. 하얀 털이 날아다니거나
구석에 뭉쳐 있거나 하지 않거든.
마트 장을 본 봉투나
새로 뜯은 택배 박스를 검사 받을 일도 없어 졌어.
자주 해주지 못했던 목욕도
목욕시켜야지 목욕시켜야지- 하는 마음의 숙제도 없어 졌어.
건어물 같은 음식물을 먹을 때
물고 도망가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걸 제지 안해도 되거든
사료가 떨어졌을때나
화장실 모래를 다 썼을 때
혹시 배달이 제때 안 올까봐 걱정 할 일도 없어 졌어.
가끔 택배나 음식 배달아저씨들이 너를 보고
우와- 진짜 크다. 라고 놀라던 일도 없어 졌어.
방 어딘가 구석에 숨어 있어서 못 찾을 때
밥 줄 것처럼 사료통 흔드는 소리로 불러낼 일도 없어 졌어.
자동 급수기가 있는데도
욕실에 가면 따라와서 손으로 물을 달라고 보채는 일이 없어 졌어.
자고 일어나면
항상 내 발치에 누워있어서
복실복실하고 뚱뚱한 배를 발로 슥슥 문대는 일이 없어 졌어.
쉬는 날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놀아달라고 키보드 위에 모른 척 앉아버리는 일도 없어 졌어
그러다 들어서 옆으로 옮겨 두면
몇 시간이나 내 옆에서 물끄러미 나 보고 있었지.
하루 종일 촬영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내고 수정하고 이런 저런 전화들에 정신 없이 지내다
집에 와서 거실 소파에 앉으면
내 사정따위 아랑 곳 하지 않고 내 허벅지에 올라와서 냐- 하고
빨리 자기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두드리라던 요구도 없어 졌어.
컴컴한 집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길똥아?’ 라며
혹시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죽은 게 아닌지 확인하던
겁나던 퇴근 길이 없어 졌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페이퍼 타월과 물티슈를 들고
밟지 않도록 표시하고
노란 구토물을 치울 일이 없어 졌어
먹이면 토하고
먹이면 토하고
너도 싫고 나도 싫던
필건으로 약을 먹일 일도 없어 졌어.
레날 파우치를 으깨고 물과 츄르를 섞어서
주사기로 강제로 먹이던 일도 없어 졌어.
이건 정말 싫었지? 먹는 것보다 뱉어내는게 더 많았잖아.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없어져서
편해 졌어.
그렇게 생각해.